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
시나리오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의 세계’를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가이자 창작자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영화 산업의 성숙도가 다른 미국과 한국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술과 문법부터 작가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영화를 봐도 두 나라의 시나리오 작법 차이를 단순한 스타일 비교를 넘어, 산업적 배경과 창작 생태계까지 분석하며,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방향성을 제시해 보려고 합니다.
1. 이야기의 뼈대는 어떻게 세울까?
미국 시나리오의 첫걸음은 ‘설계’입니다. 도입-전개-결말, 단순한 이 세 마디가 할리우드에서는 정밀하게 분할된 3막 구조의 도면으로 확장됩니다. 각 막은 뚜렷한 전환점으로 연결되고, 등장인물의 여정은 갈등과 해소를 치밀하게 교차하며 전진합니다. 미국 작가들은 마치 건축가처럼 이야기를 ‘짓습니다’. 시나리오에 정해진 문법이 존재하며, 이를 어기는 순간 ‘아마추어’로 낙인찍히기도 합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점을 스스로가 알 수 있을 듯합니다.
반면 한국 시나리오는 그보다 유기적이고, 때론 본능적입니다. 물론 3막 구조를 차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야기의 힘보다 감정의 흐름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한국인들은 감정에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이는 감독 주도형 제작 환경에서 비롯된 특성이며, 실제로 많은 감독이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하거나 작가와 공동 창작합니다. ‘감정선’과 ‘정서적 리듬’이 중요하게 다뤄지며, 문학적 표현이 강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의 영화 속에는 문화가 잘 표현되어 있듯이요.
이처럼 미국은 '구조적 완결성'을, 한국은 '감정의 진정성'을 우선합니다. 두 나라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으며, 이 차이는 곧 작품의 뉘앙스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합니다.
2. 서로 다른 의미로 작가를 키우는 토양, 시스템
미국은 시나리오 작가를 하나의 ‘직업’으로 명확히 분류합니다. 작가 조합(WGA)을 통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에이전시와 매니지먼트를 통해 경력 관리까지 가능합니다. 이는 곧 작가의 지위가 보장된다는 의미이며, 스토리를 중심에 두는 제작 시스템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구조입니다. 대학 내 영화학과나 전문 시나리오 과정도 고도로 체계화되어 있어, 배우고 쌓고 도전할 수 있는 루트가 분명합니다.
반면 한국은 작가의 시작이 다소 모호한 안개지대에서 출발합니다. 시나리오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 점차 늘고 있지만, 대부분은 공모전, 연출부, 조감독, 또는 작가실 조수 등 현장 중심 경로로 진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구조는 실전 경험을 중시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진입 장벽이 명확하지 않아 많은 이들이 혼란을 겪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에는 아직도 ‘작가는 예술가’라는 낭만과 ‘작가는 소모품’이라는 현실이 공존합니다. 이로 인해 정당한 계약 없이 구두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남아 있고, 창작자의 권리가 보호되지 않는 사례도 빈번합니다. 물론 최근 들어 작가 노조나 관련 단체들이 생겨나면서 개선 움직임이 있으나, 미국과 같은 시스템적 안정성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습니다. 아직도 이런 문화는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기에 변화가 시급한 것 같습니다.
3. 대중들이 원하는 이야기, 작가의 존재감
할리우드 시스템은 ‘스토리를 팔 수 있는 시장’입니다. 즉, 완성된 시나리오 한 편이 독립된 상품으로 기능하며, 제작사가 이를 구입하거나 옵션 계약을 체결해 영화화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이야기의 상품성, 장르의 적합성, 그리고 작가의 서사적 역량입니다. 한 마디로, 작가는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유통할 수 있는 ‘콘텐츠 비즈니스 주체’로 기능합니다.
한국은 상황이 다릅니다. 시나리오가 독립된 상품이라기보단, 하나의 요소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우, 감독, 자본이 결합된 후에야 시나리오가 본격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구조이죠. 때문에 ‘작가가 중심’이라는 관점보다는 ‘연출의 일부’라는 인식이 강하며, 시나리오가 수정되는 과정에서도 작가의 권한이 미미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권한은 아주 중요한 부분일 텐데요.
하지만 시대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OTT 플랫폼의 성장과 해외 공동 제작 사례가 늘어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는 작가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감독
의 그림자’가 아니라, 서사를 리드하는 창작자로 작가의 역할이 조명받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과 한국의 시나리오 작법 차이는 단순히 문장의 구조나 포맷의 차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각각의 문화, 산업, 제작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든 결과이며, 작가로서 어떤 환경에 발을 디딜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어느 한쪽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만큼, 자신이 지향하는 창작 스타일과 목표 시장에 맞춰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지금은 국경 없는 콘텐츠의 시대, 두 문법을 모두 이해하고 융합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강력한 경쟁력이 됩니다. 언젠가 한국의 시나리오 작가들도 미국의 수준을 뛰어넘는 대우를 받으며 더 멋진 작품들을 탄생기킬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부족한 부분들을 개선해 나가길 바랍니다.